코미야마 사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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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 빼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유명해서 '던지는 정밀 기계', '미스터 컨트롤', '고글맨'이란 별명을 가졌고 전반기에는 이라부 히데키와 에릭 힐만, 후반기엔 쿠로키 토모히로와 함께 90년대 치바 롯데 마린즈의 암흑기를 이끌었다.
2. 선수 경력[편집]
어릴 적부터 도쿄 6대학 리그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3수까지 하면서 와세다대학에 입학, 와세다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1989년 드래프트 1순위로 롯데 오리온즈에 입단하였다.
롯데에서 선발 투수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다 이닝 등의 기록을 내면서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선발로 활약했었다. 이후 메이저리그 진입을 염두에 두고 FA를 선언하려 했으나, 롯데 구단 측에서 파리그 타구단으로 이적하지 않는 조건으로 자유계약으로 풀어주겠다고 제안하였고, 자유계약으로 풀린 후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입단하여 2년간 뛰었다.
이후 FA를 선언하고 2002년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나 딱 1시즌 불펜으로 뛰고 방출되었고, 이후 FA 당시 소속 구단이었던 요코하마가 재영입을 거절한 데다 FA 보상[3] 문제로 어느 구단도 코미야마의 영입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바람에 강제로 2003년을 FA 미아로 보내야 했다. 이후 2004년 메츠 시절 감독이었던 바비 발렌타인이 옮겨간 데뷔팀 치바 롯데 마린즈에 복귀하여 준너클볼인 '셰이크'라는 구종을 던지는 것으로 소소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폼이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이적 후엔 주로 추격조로 뛰었다.[4] 그렇게 롯데에서 불펜으로 6년간 뛰다 2009년 시즌 종료 후 44세의 나이로 은퇴하였다.
3. 은퇴 후[편집]
은퇴 이후로는 해설가나 J리그 이사직 등을 역임하다가 2019년부터 모교인 와세다대학 야구부의 감독에 취임했으며, 취임한지 2년차인 2020년 가을에 도쿄 6대학 야구 가을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주장은 현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뛰고 있는 하야카와 타카히사.
4. 기타[편집]
- 1998년 치바 롯데가 프로야구 최고 기록인 18연패(連敗)[5] 를 기록할 당시, 연패의 시작과 끝을 모두 기록한 것이 바로 코미야마 사토루였다. 본인의 패배로 팀의 연패 신기록을 수립하는 시작점을 끊고 본인의 승리로 그 연패를 멈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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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학부. 요요기제미날에서 2년 재수해서 입학했다.[2] 1989년 드래프트는 노모 히데오의 등장으로 롯데를 포함한 전체 8구단이 노모를 지명했다. 롯데는 노모 지명에 실패하고 당시 순위가 일본시리즈를 내준 퍼시픽리그 최하위로 최우선순위로 추가지명을 할 수 있어 코미야마를 지명했다.[3] 해외 FA의 경우엔 해외 이적 시점에서 2년 후의 11월 30일까지 원 소속구단 외의 다른 구단과 재계약할 시 해당 구단이 원 소속구단에 보상을 줘야 한다.[4] 어린 투수들이 패전처리 투수로 가비지이닝에 등판했다가 깨지면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패전조행을 자청했다고 한다.[5] 6월 13일~7월 8일까지 1무 포함 18연패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연패를 시작한 경기와 타이기록-신기록을 세운 경기, 연패를 끝낸 경기 모두 상대팀이 오릭스 블루웨이브였다.